2025년 8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기도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라브리 지붕 처마 밑은 요즘 무더위를 피해 날아든 새들로 분주합니다. 기록적인 폭염 속, 불안한 나날에 여러분은 어디로 피하고 계신지요? 저는 ‘피난처’라는 뜻의 라브리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오랫동안 안간힘을 다해 하나님을 피해 왔습니다.
그러다 끝내 예수님의 매력에 사로잡혀서 지난해 10월부터 라브리 간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 10개월 동안 하나님의 일하심을 매일 목격하는 쫄깃한 재미로 지내며, 때로는 제 과거와 현재의 죄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에 절규하다가, 다시 하나님께 의지하며 사랑과 힘을 긴급 공급받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못난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먼저, 지난 기도편지에서 기도부탁을 드린 일들에 대해 하나님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본채 휠체어 진입로 공사
장애인들이 안전하게 라브리에 드나들 수 있도록 본채 진입로 공사를 위해 기도 부탁을 드렸는데, 7월 말 대천중앙감리교회 청년부가 와서 정성스럽게 휠체어 진입로를 완성해 주었습니다. 여기에도 정광식 집사님의 아이디어와 수고가 빛을 발하였습니다. 별채의 누수와 곰팡이가 심한 천장과 벽, 그리고 바닥을 새로 단장해 주었고, 전기 장치도 안전하게 손봐 주었습니다.
아침부터 밤까지 성실히 일했을 뿐 아니라, 공사비를 직접 모아오고, 손수 고칠 수 없는 부분은 저희가 자재를 사서 인부들과 함께 수리할 수 있도록 헌금까지 해 주었습니다. 마음을 열고, 지갑을 열고, 땀 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놀랍고 아름다웠습니다.
이렇게 안전한 길이 열리자, 몇 달 전 라브리에서 휠체어를 타고 가파른 길을 내려가시다 크게 다치셨던 목사님이 며칠 전 다시 방문하셨습니다. 편안하고 안전하게 올라오시고 환히 웃으시는 모습을 보니 얼마나 안심이 되던지요. 앞으로 재정이 마련되는 대로 눈이나 비가 오는 날에도 안전하게 오갈 수 있도록 경사로도 수리하고 미끄럼 방지 장치도 하려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더욱 안심하고 이곳에 오가며, 머무는 동안 하나님과 한 걸음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해 주세요.
여름학기와 헬퍼들
여름학기를 위해, 그리고 함께 땀 흘리며 섬기러 오신 헬퍼들을 (광식·남정 부부, 태윤·현지 부부와 18개월의 아루)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이분들의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과 시기적절한 도움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릅니다.
이번 여름학기는 여러모로 특별했습니다. 찾아오신 분 중에는 정말 어려운 상황에 있는 손님들도 있었습니다. 손님들을 위해 간사 회의 때마다 함께 울며 기도하며, 하나님이 저희에게 무엇을 하기를 원하실까 구했습니다. 한 손님은 표현적 개인주의의 자아관과 성경적 자아관을 비교한 생각을 발표한 뒤, “언젠가 라브리에 다시 오겠다”는 말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은 솔직하게 하나님께 기도해 보겠다”는 약속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다음에는 예수님 안에서 같은 자매로서 만나 다시 부둥켜안고 싶습니다. 저희의 부족한 사랑과 서투른 노력 가운데서도, 주님께서 오직 선한 씨앗만 남겨 꽃피우시기를 기도해 주세요.
라브리 기독교세계관학교
코로나 이후 처음 열린 세계관학교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전체 혹은 부분 참석자를 합하면 약 40 명이 모여서 배우고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윤석 박사님(서울기독교세계관연구원 원장)과 이영미 사모님이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하시며 강의뿐 아니라 다정하면서도 핵심을 짚는 피드백으로 섬겨 주신 것도 정말 감사했습니다. 13명이 각자 품어온 관심과 고민을 글로 준비해 발표하고 토론하며, 정성스럽게 준비된 음식과 미니콘서트도 즐기며 밤늦도록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1급 장애인으로 한 글자씩 힘겹게 타이핑한 발제로, 한국 드라마 속 신(神)들이 얼마나 불완전하며 오히려 인간의 사랑에 의해 구원받아야 하는 존재들인지를 꼬집어준 사람
- 일본에서 와서, 과거 자신의 왜곡된 소명 이해를 성경적으로 재조명하며, 기독교인이 극소수에 불과한 일본 사회 속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을 솔직히 나눠준 사람
- 평생 설치미술가로 살아오며,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낭비’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메시지를 작품 속에 구현하려는 열망을 보여준 사람
- 이 외에도 정치, 사회학, 교육학, 비전론, 자유, 멘토링 등을 다루면서, 예수님을 닮은 분별력과 실천과제를 진지하게 모색하는 발제들이 이어졌습니다. 때로는 머리가 지끈하기도, 때로는 마음이 욱씬거리기도, 때로는 실천해보고 싶어 손발이 근질근질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세계관 학교에서 의도치 않게 드러난 주제를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낮음’이었습니다. 한 치 앞이 불확실한 우리의 현실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낮음을 어떻게 살아내며 그분의 기쁨과 자유, 그리고 풍성한 재미를 누릴 수 있을까요?
- 마감 앞에서 능지처참을 앞둔 것처럼, 마냥 한없이 작아지던 한 뮤지컬 작가는, 궁극의 스토리텔러이신 하나님의 필모그래피와 성품에 의지하며 기쁨의 걸음을 내딛게 되었고,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겨주었습니다. (이 작가의 고생길을 지켜봐 온 제 어머니가 발제를 듣고 펑펑 우셨습니다)
- 직장에서 ‘빌런(villain)’ 상사들 때문에 속앓이하던 한 사람은 발제를 준비하며, 자신 안에도 빌런이 있음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스스로 빌런이 되지 않으면서 빌런을 용서하고, 공동체와 함께 지혜롭게 대처하며 빌런을 사랑하는 길을 함께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베트남에서 날아오신 한 선생님은 “낮은 자만이 즐기는 농담”이라는 발제로, 세상의 기준과 콤플렉스에서 자유로워져 자신의 낮음을 기쁨과 유쾌함으로 탈바꿈하는 비결을 나누었습니다.
- 또 한 사람은 저희 믿음의 선배 오스 기니스의 삶과 사상을 소개했습니다. 특히 그의 ‘바보 변증(fool’s talk)’을 통해, 복음에 무관심하고 냉담한 이들에게 유머와 풍자, 약함, 이야기, 상상력을 동원해 역설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을 나누며 도전을 주었습니다.
고든 피(Gordon D. Fee)에 따르면, 성경이 말하는 낮음 혹은 겸손은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creatureliness)에서 나오는 낮음입니다. 창조주 앞에서 솔직한 현실파악이랄까요. 우리는 죄성과 유한함을 지닌 존재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예수님의 신부라는 영광스러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피조물은 피조물답게 전적으로 창조주께 의지하며 그의 시선을 받아들이면 됩니다. 사람이 세운 높낮이의 기준에 집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곧 겸손한 사람이 누리는 자유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낮아지심으로 오히려 가장 높아지신 예수님의 역설적인 복음이, 낮은 마음을 품고 서로 사랑하시는 기도가족 여러분의 기쁨의 근원이 되길 기도합니다 (빌립보서 2:1-11).
다음 기독교세계관학교는 2027년 1월로 계획하고 있습니다. 여름 관광철에 외부숙박을 하며 참석을 하기에는 숙박비가 너무 비쌌기에 이번엔 계절을 옮겨보려 합니다. 다음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고민을 정직하게 탐구하고 정리해 나누어 줄 분들을 기다립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제목을 나눕니다.
- 라브리를 다녀간 손님들이 배운 말씀과 품은 질문을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향한 여정으로 이어가고, 그 씨앗이 선한 열매로 맺혀 퍼지도록.
- 가을학기(2주간 매일 개방: 9월 6일~19일, 10월 18일~31일)에 꼭 필요한 분들이 머물며, 말씀과 사랑으로 회복되고, 헬퍼로 도와주시게 될 박성준 목사님·동미라 사모님이 건강과 기쁨으로 섬기실 수 있도록.
- 재정과 간사를 위해 — 필요한 재정을 보내주시기를, 체력의 한계를 넘어 일한 간사들이 육체·정신·영적으로 회복되도록 기도해주세요.
2025년 8월 13일
서로 다른 곳에 있어도 주님 한 분을 바라보는 동역자 여러분의 얼굴을 떠올리며,
오늘도 힘과 용기를 얻어 기도하는 혜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