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자매, 형제님들에게,
무덥고 습한 날씨가 이어지는 한국 양양의 라브리(L’Abri Fellowship)에서 인사드립니다. 이곳은 여름의 최성기로 접어들면서 고온다습한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제아무리 7월의 삼복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라도, 동해안 산자락에 지낸다고 하면 시원한 산들바람을 떠올릴 수 있을텐데요. 하지만 태양이 한없이 내리쬐고 땀이 멈추지 않는 이 날씨는 이상하게도 자꾸만 세인트루이스(St. Louis)의 한여름을 떠오르게 합니다.
그렇지만 후덥지근한 날씨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더불어 사는 삶이 가져다주는 참 기쁨을 앗아가지는 못하지요. 이전에 주변사람들로부터 들었던 라브리 공동체의 핵심이 바로 ‘기도, 환대 그리고 질문’이라는 것을 이곳에 지내면서 직접 체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그리스도를 통한 삶의 실천이자 표출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세 가지 핵심가치는 바로 라브리의 생명소로 통합니다.
무엇보다도 라브리는 기도와 말씀 묵상을 통해 하나님과의 긴밀한 시간을 온전히 누릴 수 있는 곳입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하나님의 창조물의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곳곳에서 만끽할 수 있지요. 바위로 둘러싸인 강변을 홀로 거닐기도 하고, 바로 가까이에 있는 산을 타고 정상에 올라가 정자에서 잠시 쉼을 취하고 있다 보면, 사방에 펼쳐진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세계가 그분의 위대함을 드러내고 있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작디작은 묘목과 참새조차 어여쁘게 돌보시는 그분의 섬세한 손길도 느껴집니다.
기도는 지금 바로 여기에 계시는 하나님의 임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며, 그분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합니다. 바로 이러한 기도가 지금 이 순간 라브리에 역사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자매, 형제들에게 보낸 서신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권하였던 마음이 바로 이와 같지 않았을까요.
라브리에서는 개인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기회도 많지만, 특히 정성껏 준비한 식탁에서의 식사 시간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게 됩니다. 맛있고 영양가 높은 음식으로 가득 찬 밥상은 더할 나위 없고,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식탁을 둘러싸고 앉아 사람들과 나누는 교제의 시간을 통해 우리 모두가 최고의 환대를 경험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노래에서 보면, 잔치에 초대를 받은 신부는 신랑에 대한 그녀의 마음을 “그가 나를 인도하여 잔칫집에 들어갔으니 그 사랑이 내 위에 기로구나”고 표현합니다. 비록 그 잔칫상은 가정식 수프와 빵만 갖추고 있을 수도 있으나, 그리스도와 함께하기에 감사와 평화와 사랑으로 가득한 축제 그 자체입니다. 그분의 임재는 모든 손님에게 은총을 베풉니다.
누가복음 14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같이, 함께하는 식탁에서의 시간은 자유로운 질문을 이끌어 냅니다. 호기심 많고 회의적인 사람들은 예수님께 질문을 던집니다. 질문한 사람의 의도뿐만 아니라 그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예수님은 하나의 명확한 답을 제시하기 보다는 우리가 더욱 진리에 다가갈 수 있도록 다시 질문을 던지는 방법을 취하시기도 합니다.
최근 한 손님이 아주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며 저에게 질문을 해왔습니다. “죄송하지만 너무 사적인 질문일 수 있으나...” 그러고는 좀더 편한 마음을 가지고 본격적으로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살면서 가장 후회한 순간이 언제였나요?” 약 41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하면서 제가 실수했던 많은 순간들을 떠올리며 나눈 진솔한 (가끔은 지나치게 솔직한 것이 탓이죠(웃음)) 답변들이 그분께 힘이 되었기를 바라봅니다. 저의 지난 실수들을 되돌아보면, 그 순간들이야 말로 저의 아내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매일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를 더할 나위 없이 입증하고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신앙에 대한 회의, 교리를 공부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혼란,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아 느끼는 실망감과 같은 다양한 질문들도 존재합니다. 어떠한 질문도 주제도 환영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데살로니가전서 5:21)”고 간곡하게 권면하는 바울의 본을 따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공동체 안에서는 진리를 알기 위한 탐구와 질문이 끊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믿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요 8:31-32)”. 우리는 매일 끊임없이 기도하고, 먹고, 질문함으로써, 오직 믿음을 통해 우리 안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이루실 줄을 확신합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이 여름 아침에 제 숙소에 앉아 이곳 라브리에서 함께 기도하고, 먹고,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그리스도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과 삶을 나누고 있는 시간들을 떠올리며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식탁에 오셔서 우리의 질문들에 답이 되어 주시는 그분과 더욱 가까워지기를 온 마음 다해 기도하고 소망합니다.
오늘 하루도 그분의 은혜와 평안으로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2019년 7월 26일
양양 라브리에서 코델 형제 드림
번역: 한보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가르침을 받아 다른 이들로 하여금 그에 대해 알게 하라”
코델 슐튼 형제는 5주 동안 양양 라브리에서 객원 강사로 수고했습니다. 그는 미국 미주리주 펜톤에 있는 헤리티지기독교고전학교 교사이며, 미주리주 커크우드에 있는 한인장로교회 목사로 시무하기도 했고, 포항 한동대학교 및 미국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미주리침례교대학교와 폰트본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한 바 있습니다. 1986년에 세인트루이스대학교 법대를 졸업하고 2004년에 커버넌트신학교에서 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콩코디아신학교에서 신학과 문화를 공부했습니다. 코델과 그의 아내 샌디는 41년째 결혼 생활 중이며, 슬하에 4명의 자녀와 5명의 손자, 손녀를 두었습니다. 코델의 책 <르 슈맹: 예수의 길을 온전히 따르기>가 8월 말에 미국에서 출간될 예정이며, 한동대학교 학생들이 출간을 도와 준 <Life Abroad @ Handong>이라는 책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