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기도 가족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창 밖에는 아직 차가운 바람이 물러갈 운명에 놓인 겨울의 마지막 위용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도 봄이 오는 소리는 분명히 들립니다. 마녀가 점령한 나니아 왕국에도 아슬란의 봄이 온 것처럼, 퇴각하는 겨울 바람이 아무리 발버둥을 치더라도 약속한 봄 바람에 밀려나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은 봄은 그립기만 할 뿐 올 것 같지는 않고 찬 바람만 스산하여 감사와 기쁨은 사라지고, 가슴은 메마르고 피곤만 가득한 것 같습니다.
지난 겨울에 찾아온 이들 중에도 이 세상의 찬 바람에 쓰러진 청년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는 인간의 죄성이 고스란히 묻어나 타락한 학문이나 세상의 유행에 넘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믿음의 성숙을 위해 만들어졌던 규칙들이 율법주의로 변질되어 이에 짓눌린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술, 담배, 수동적인 교회봉사 등에 대한 죄책감과 이에 대한 끊임없는 가짜 회개(죄가 아닌 데 대해 회개를 하니까요)에 지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용서 받은 기쁨과 자유를 맛보지 못하고 무기력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외에는 다른 해결책이 없음을 깨닫고 자유와 기쁨을 회복하며 순간순간 예수님과 함께 살기로 다짐한 청년들도 있었습니다.
모두 여러분의 기도가 필요한 청년들입니다. 성난 사자같이 울부짖는 마귀로부터 주의 청년들이 이길 수 있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습니다. 오늘도 학교에서나 직장에서 그들이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동행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양심이 무디어져 가슴이 마른 뼈처럼 된 청년들이라 하더라도, 에스겔서에 나오는 것처럼,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기가 살아나도록 간절히 기도해주십시오. 그리고 이들을 돕겠다고 일하고는 있지만, 청년들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이 오히려 선생으로서 더 큰 죄를 지을 수 있는 저희 간사들을 위해서도 계속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가슴 아픈 사연들도 많지만, 여전히 우리는 하나님을 닮은지라 재미있고 아름답고 유익한 배움도 많습니다. 이번 설 연휴에는 청년들과 함께 세배도 하고 설 음식도 먹으며 즐겁게 지냈습니다. 러시아 학생도 있었고, 미국인도 두 명 있었습니다. 세배도 처음 해보고 세뱃돈을 처음 받아보는 청년도 있었습니다. 이번 설을 위해 과일, 생선, 과자 등을 보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풍성한 설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가까운 삼척제일교회 청년들과도 재미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대생들이 많았는데, 평소에는 말이 별로 없던 이들이 과학에 대한 강의시간에는 열심히 듣고 끝없이 질문을 던지기도 하여 정말로 반가웠습니다. 로고스고전학교 가족들 40명의 방문도 있었는데, 학부모들 중에는 라브리를 세운 프란시스 쉐퍼의 전기를 읽고 온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학생들이 곧『이성에서의 도피』를 읽을 예정이라고 했는데, 현대 문화의 뿌리와 문제를 잘 파악하고 훗날에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긴 겨울학기를 마친 다음 날이어서, 저희는 간신히 강의와 식사대접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추운 1월에 문을 열고 손님을 대접한다는 것은 경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볼 때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난방비도 많이 나가고 체력이 많이 소모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성령께서 보내주시는 청년들을 내쫓을 수는 없자 않나요? 감사하게도, 작년에 히트 펌프 두 대를 설치해주신 분께서 한 대를 더 설치해 주셨습니다. 꾸준히 증가하던 전기세가 작년에는 히트 펌프 덕분인지 처음으로 조금 줄었습니다. 올해는 더 줄일 수 있으리라 기대됩니다. 사랑의 배려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오븐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6년 전 겨울, 오븐 렌지 세 대를 선물 받고 이듬해 한 대를 더 구입하여 저희는 지금까지 네 대의 오븐 렌지로 수많은 손님을 대접해왔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온도가 맞지 않더니, 지난 가을부터는 한 대씩 고장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한 대만 제대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언제 고장 날 지 몰라 조마조마하던 차였습니다. 손님들은 잘 몰랐겠지만, 일부 기능은 포기하고 여러 번 고쳐 가며 밥을 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우리의 사정을 아신 하나님께서 어느 작은 교회를 통해 오븐 네 개를 한꺼번에 교체해 주셨습니다.
라브리가 밥을 못할 위기는 이렇게 넘기게 되었습니다. 라브리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이 사람 저 사람을 통해 놀라운 방법으로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비싼 나드 향유를 부어 예수님의 발을 닦은 마리아처럼, 기도로, 헌금으로 라브리에 ‘거룩한 낭비’를 하신 모든 분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하마터면 빠뜨릴 뻔한 내용이 있네요. 줄리아가 사용하는 2층 김정식홀 부엌(제가 지난 3년 동안 사용했던)에 아름다운 3중 연동문을 달았습니다. 겨울에는 덜 춥고 여름에는 덜 덥게 식사준비를 할 수 있게 되어 이제야 마음이 놓이게 되었습니다. 문을 달아놓고 보니, 이 부엌에서 추위에 떨며 또 한여름에 땀에 푹 젖어가며 식사준비를 했던 간사들과 협동간사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스쳐갑니다. ‘이게 뭐 그리 대단하다고 일찌감치 못하고 그리도 고생했을까?’라는 생각이 들며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저며 옵니다.
삼원 간사는 아버지의 소천 이후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을 텐데도 맡은 일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충성 간사는 허리가 아픈 중에도 추운 겨울을 열심히 지냈습니다. 줄리아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희 부부와 아이들도 힘을 다했습니다. 모든 간사들이 겨울 내내 일한 까닭에 몹시 피곤하였으나 끝까지 견딜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봄이 더 기다려지는 것 같습니다. 겨울의 죽음이 있고 봄의 생명이 오는 것처럼, 죄가 죽고 생명을 누리는 시간도 더 기다려집니다. 우리네 살림에도, 경제에도, 정치에도 우리는 봄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겨울의 죽음처럼 우리의 죄와 욕심이 죽지 않는다면, 우리의 봄에 평화와 생명이 있을까요? 기도 가족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생명이 가득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7년 2월의 끝자락에
양양에서 박경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