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라브리 가족에게 올립니다.
2016년 한 해 동안 편안하셨는지요? 요즘은 안부를 묻기도 힘이 드네요. 지난 몇 달간도 매우 불안했지만, 또 앞으로 몇 달 동안 더 지속될 정치적 불안정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어느 누구도 안녕할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은 “부조리하다”(‘헛되다’, 전도서)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헤쳐 나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라브리 마당에는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팻말이 서 있습니다. 아마 2001년에 양양으로 이사 와서 세운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몇 주 전에 라브리 채플에서 설교를 통해 그 말씀의 배경과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특히 요즘과 같은 때에는 이 말씀이 시사점이 있는 것 같아서 기도 가족과 나누고 싶습니다. 본문은 요한복음 8:31-59절이고, 제목은 “답답한 종의 습관들”이었습니다. 메시지의 핵심은 답답한 지도자는 답답한 종이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답답한 종은 자기가 종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씀하시자, 유대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고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실제로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었고, 이미 애굽의 종, 바벨론의 종이 되었던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도그마에 갇혀서 자기들이 종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우리도 죄의 종으로 살아왔고, 다른 사람 밑에서 일하는 종이기도 합니다. 지도자들 역시 하나님으로부터 권위를 위임받은 종들입니다. 그런데 가끔은 우리가 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주인인줄 착각하지 않습니까?
답답한 종은 왜 자기가 종이라는 것을 몰랐을까요? 그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정통성에 빠져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하나님을 자기들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선민의식(選民意識)을 강하게 드러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혈통이 아닌 믿음의 자손”이어야 하며 “실제로 너희는 마귀의 자식”이라고 반박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너희는 죄의 종인데 내가 너희를 구해내어 자유롭게 해 주겠다”고 하여도, 선민의식에 빠져서 듣지 않았습니다. 정통성에 눈이 먼 사람들은 오히려 종들끼리 서열을 세우는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아마 그것은 주인(본문에서는 ‘마귀’를 가리키며, 세상에서는 ‘윗사람’을 말합니다)에게 더 잘 보이려는 의도였겠지요? ‘갑의 종’이 ‘을의 종’ 위에 군림하거나 종들끼리 싸워봤자, 주인만 득이 되지 종들에게는 득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에 일본인들이 한국인 중간 관리자를 두고 한국인들을 다스렸던 것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정통성’을 좋아하는 우리도 종이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우리끼리 싸우고 있지는 않나요?
답답한 종은 자기 경험과 지식을 넘어서는 큰 그림을 보지 못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처럼, 이 답답한 종들은 좁은 안목과 알량한 지식으로 하나님을 판단하였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선지자들”을 안다고 했으나, 사실은 ‘아브라함과 선지자들’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브라함”보다 더 높은 분을 알아보지도 못했으며, 선지자들을 존경하는 사람들처럼 말하지만 선지자들이 살아있을 때에는 탄압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아브라함”을 안다고 하면서도, 정작 아브라함이 기다린 메시야가 왔으나 그를 무시하였습니다. 그들이 생각하던 메시야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겸손하고 연약한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 자신의 그릇을 넘어가는 큰 그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경험이나 지식으로 큰 진리를 보지 못하는 것은 없을까요?
답답한 종은 자기의 문제점을 지적한 예수님을 반대했습니다. 예수님이 “진리를 알고 종살이로부터 자유를 얻어라.”고 했을 때, 유대인들은 종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회개하기는커녕 예수님을 “사마리아 사람” 혹은 “귀신이 들렸다”고 폄하하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문제점을 받아들이지도 않았지만, 예수님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는 유연한 태도도 전혀 가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별로 교육도 못 받고 훌륭한 집안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놓고 무시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그렇게 대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사람들을 오히려 폄하하지 않습니까?
답답한 종은 어디에서 그런 동기를 얻었을까요? 그들은 “증오심”(살인, 44절)에서 동기를 얻었습니다. ‘갑’의 종이 ‘을’의 종을 “증오하는 마음”을 가지면 누가 좋아 하겠습니까? 주인이 편해집니다. 왜냐하면 주인은 서로 싸우는 종들끼리 경쟁을 붙이기만 하면 관리하기가 훨씬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혈연, 학연, 지연, 그리고 편 가르기 등을 부추기는 것도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가 싸울 때 누가 웃겠습니까? 마귀입니다.
그러면 이 답답하고 어리석고 악한 종들에게 예수님은 어떤 답을 주셨나요? 첫 번째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32절)고 말씀하셨고, 두 번째는, “나는 그를 알고 또 그의 말씀을 지키노라”(55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비 진리를 말하거나 조용히 있음으로써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은 악한 종입니다. 안전하게 중립을 지키면 세상의 악과 공범이 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그리고 매일의 영적 전쟁 속에서 생각해볼 점이 많은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한 해는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습니다. 1월에는 학기 말에, 정인영 선생과 함께 한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 읽기’가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20 여 명이 추운 겨울날 난롯가에 둘러 앉아 같이 책을 읽고 토론한 매우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책을 좀 더 이해하게 되자, 모두 루이스의 친구가 되었습니다. 정인영 선생은 동두천에 <쾌걸가>를 짓고 루이스 읽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루이스 읽기가 끝나는 날, 사고가 하나 생겼는데, 화목 난로에 불이 나서 정말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진성 선교사가 연통을 식히기 위해 3층 지붕 위로 맨발로 올라가서 재빠르게 물을 퍼 부은 것은 두고두고 전해지는 무용담입니다. 감사한 것은 아무도 허둥대거나 불평하지 않고 불도 끄고 소화기 가루를 깨끗이 치운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저희는 난로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제 남편이 그날 윤석 선생을 얼마나 꽉 안았는지, 훗날 윤석 선생은 “인경 간사님의 두려움이 그대로 전해졌다”고 적었습니다. 정지인 집사가 11월에 난로를 철거해 가신 이후에야 제 남편은 편히 잘 수 있었습니다. 얼마 동안 벌겋게 달아오른 난로가 꿈에 종종 보이곤 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그 순간 서로 적극적으로 순종하고 협동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립니다.
2월 중순부터는 한 달 동안 도서관을 숙소로 개조하는 공사를 했습니다. 드디어 저희 부부는 다락방에서 1층으로 내려와 아이들과 함께 살게 되었고, 저희 부부가 있던 곳은 줄리아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실비만 받고 공사를 해주신 정지인 집사에게 감사드립니다. 간사들은 공사를 돕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족한 공사비를 메꾸기 위해 생활비를 덜 받기도 했습니다.
4월 말부터는 다시 손님들이 북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강의 시간이나 성경 읽는 시간만 아니라 식탁이나 응접실에서 찻잔을 들고 열띤 토론을 벌이는 청년들의 모습이 보기에 너무 좋았습니다. 캐나다로 돌아간 진성, 슬아 선교사의 뒤를 이어 삼원 간사가 들어오면서 새로운 간사팀이 만들어졌습니다. 이제 몇 가지 기도를 부탁드리려 합니다.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오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가 별로 반기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단체로 찾아왔습니다. 소명고등학교의 고3 학생들이 수능시험을 본 후에 며칠씩 지내다가 가는 프로그램은 3년째 진행되었습니다. 수능시험 후 결과를 기다리며 찾아오는 불안과 자유, 진로에 대한 고민 등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습니다. 내년에는 좀 더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소명고등학교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학교에서도 문의가 있어 좀 더 많은 생각을 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20대, 30대 대학생, 청년들도 많이 다녀갔습니다. 그러나 예전 같지는 않았습니다. 취직의 어려움과 높은 실업률 등을 손꼽기도 하지만, 저희가 혹시 이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곰곰이 돌아보고 있습니다. 어느 연령대의 사람이든 하나님이 보내주시는 사람이지만, 가장 사회에서 어려운 계층인 20-30대의 청년들을 놓치지 않고 잘 이해하고 돕는 저희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요즘은 40대가 사춘기(四春期)라나요?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에 적당한 때”라고들 하면서 40대가 많이 찾아왔습니다. 비전, 진로문제, 신앙의 문제, 그리고 부부관계 등을 다루며 생각이 잘 바뀌지 않아 힘들기도 하고, 그런가하면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익살스런 유머와 장난도 재미있었습니다.
50대 이후의 손님들도 꽤 있었습니다. 저희의 젊은 간사들이 힘들어하는 연령대지요. 그러나 나이가 많다고 해서 젊은 사람들보다 언제나 믿음이 좋거나, 성숙하거나, 걱정거리가 없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친구가 되어 서로 존중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배우기에 유익했습니다.
외국인들 중에 라브리에서 공부하며 많은 도움을 받고 간 필리핀의 스테파니가 기억납니다. 그리고 이틀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예수님을 믿고 돌아간 미국 조지아에서 온 후안으로 인해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키시고 믿음과 지혜를 더하시기를 기도해주십시오.
삼원 간사의 요청에 따라, ‘간사 아카데미’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공부를 위해서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아카데미 멤버는 삼원, 충성, 줄리아, 경옥, 인경입니다. 저희 부부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간사들 훈련을 생각하고 있던 차에, 자발적인 이런 공부 시간을 갖게 되어 매우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공부가 먼저 간사들 자신들에게 도움이 되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젊은 간사들이 부족한 저희 부부의 어깨를 딛고 서서 더 겸손하고 충성되며 실력 있는 간사들이 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한국 라브리는 여러 이유로 지난 몇 년 동안 개방기간을 4-7주로 짧게 운영 해왔습니다. 이번 가을에도 라브리에 좀 더 오래 머물렀으면 좋았을 대학생들이 있었는데, 일찍 보내게 되어 매우 가슴이 아팠습니다. 라브리에서는 많이 좋아졌으나, 집으로 돌아가서는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갔기 때문입니다. 이런 청년들이 생각과 생활 습관이 어느 정도 바뀔 때까지 장기간 머물도록 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개방 기간을 지금보다 더 늘이려면 간사들이 더 헌신하든지 아니면 간사들이 더 많아지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이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내년 1월 5-7에는 올해에 이어 두 번째 기독교세계관학교를 열게 됩니다. 이를 위해 여러 강사들이 수고할 예정이지만, 특별히 네덜란드 라브리에서 빔 리트께르크 목사가 오십니다. 그는 지난 20 여 년 동안 국제라브리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라브리 이사장을 겸임했습니다. 이번에 오시면 기독교세계관학술동역회 이사장이신 손봉호 박사와 패널 강의를 하게 됩니다. 연일 터지는 유럽의 테러 현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계시는 분이므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빔 목사는 3일에 도착하여, 세계관학교를 마치고 11일까지 양양에 머무실 예정입니다. 빔의 안전한 여행과 건강, 강의와 통역 등을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감사하게도, 빔 목사의 여비는 마련되었으나, 그 밖에도 세계관학교 기간에 라브리 간사 및 가족들이 모두 서울에서 먹고 자야하기 때문에 경비가 많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혼란한 시대에 하나님의 지혜와 전략적 사고를 찾는 청년들을 격려하여 보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2016년 한 해 동안에도 라브리 가족으로서 기도와 후원에 힘써 주신데 대해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잘 아시겠지만, 한 사람이 생명을 얻고 변화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전방의 간사들뿐 아니라 후방의 기도가 절실합니다. 또 그만큼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진리로 진정한 자유를 누리시고 전파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6년 성탄절을 앞두고
양양에서 박경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