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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5월 라브리 소식편지

존경하는 라브리 가족에게 올립니다.

라브리의 봄을 “생명의 잔치”라고 말하면, 여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시겠지요? 집 앞에는 철쭉이 흐드러지게 펴서 병풍처럼 집을 두르고 있습니다. 집 뒤에는 임신한 고양이들이 평상 위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습니다. 언덕에는 다람쥐들이 숨겨놓은 도토리를 찾는지 하루 종일 달리기를 합니다. 뒷산에서는 긴긴 겨울에 살아남은 고라니가 목청을 높여 “나도 여기 있소.”라고 밤낮으로 소리를 지릅니다.

지난 3월 말에는 꿈에도 그리던 “10개국 청년들”이 라브리를 방문하였습니다. 원주에서 공부하거나 일하고 있는 20여 명의 청년들이 찾아 왔는데, 한국, 미국, 인도, 필리핀, 방글라데시, 가나, 에티오피아, 케냐, 아르헨티나, 러시아 청년들이었습니다. 작년에 라브리에서 세례를 받은 줄리아가 한국 라브리와 저에게 가지고 온 살아있는 선물이었습니다.

“청년들에게 신선한 닭고기를 좀 먹이라.”며, 천리 길을 마다않고 전라도 보성에서 양양까지 올라오신 목사님 내외분도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날 닭고기를 먹은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사랑과 우정을 뜯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강릉에서 열 아이를 입양해서 믿음으로 키우고 있는 윤정희 사모님과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도 같이 있었는데, 저희는 살아있는 믿음과 생명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어디 그것뿐이겠습니까? 라브리에서 만난 20대 중반의 예비부부가 웨딩 촬영을 하고 갔습니다. 신랑 신부가 젊어서 만이 아니라 들러리들까지도 너무나 아름다워, 마치 신화 속에서 갓 나온 선남, 선녀들이 라브리 마당에 내려온 줄 알았습니다. 수십 년 묵은 질문들을 안고 온 구도자들도 줄을 이었습니다. 잠자는 시간은 물론이고 밥 먹고 차 마시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부하고 질문하고 간 청년도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한 초등학교 선생님이 남겨놓고 간 편지 일부를 여기에 옮깁니다.

이번에 라브리에서 생각한 주제가 있다면 “소박함”입니다. 소박함은 마음을 편하게 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내려놓게 합니다. 저는 그동안 (모든 일을) “오늘”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내일(manana)”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게으르다고 판단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라브리에서 한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오늘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고 하신 말씀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 오늘 못하면 내일 할 수도 있구나. 그 생각이 참 많은 위로가 되고 마음에 평안을 찾아 주었습니다.

김시천 시인은 “아이들을 위한 기도”에서 “열을 가르치려는 욕심보다는 하나를 바르게 가르치는 소박함”을 말합니다. 저도 김시천 시인과 같이 열 가지를 하기 보다는 하나를 바르게 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제 이후의 사람들이 또 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여는 작업을 해 놓고 싶습니다. 긴 호흡으로 멀리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온전히 죄를 죽이고(mortify) 그리스도인의 삶의 실재를 늘 잃어버리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여유를 갖되 영적 게으름에 빠지지 않도록 늘 스스로를 강하게 채찍질하도록 참된 용기를 가질 수 있길 기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겸손한 선생님이 기도가 필요하다면, 저희는 얼마나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왜냐하면 라브리에는 언제나 “생명의 잔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쟁”도 매일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날은 즐거운 일이 너무 많아 하루가 빨리 지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하루가 왜 그렇게도 긴지 지옥 같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손님이 너무 많아서 비명을 지르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손님이 한 사람도 없어서 파리를 날리기도 합니다. 어떤 날은 손님들에게 밥 해드리고 이부자리를 만들어 드리는 것이 신나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이런 짓을 언제까지 할 것인지 한숨을 짓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는 브라질에서 온 한 청년이 일하다가 손가락이 부러지는 바람에 모두가 놀라기도 했고, 손님들이 다 돌아가고 난 후에 텅 빈 집에 혼자 앉아 있을 때는 외로움이 뼈 속 깊이 몰려와서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를 때도 있었고, 어떤 날은 사람들을 만나기 싫어서 밥을 굶고 싶고 싶은 날도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헌금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입이 벌어지다가도 어떤 때는 돈이 모자라서 허리띠를 조아 매기도 했습니다. 누가 “공동체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곳이다.”라고 했다지요? 아마 공동체의 희비를 사무치게 절감한 분의 고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사무엘의 모친 ‘한나’라는 여성은 한 때 아기를 못 낳아 매우 고통스러워했으나 어느 날 두꺼비 같은 아들을 낳아 신이 난 사람입니다. 신이 난 정도가 아니라 한 때는 아기를 못 낳는다고 멸시하던 여자의 콧대 보다 자기 콧대가 더 교만하고 오만방자하게 되기까지 했습니다.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간들의 가벼운 행동에 소스라치게 놀란 후에, 한나는 소리도 없는 기도에 응답해 주신 하나님께 아들을 바치기로 한 서원을 지킵니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사무엘상 2:2-10)

여기에 한나가 별견한 “거룩하신 이”, “반석 같은 하나님” “지식의 하나님”,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 등의 호칭은 당시의 대제사장이었던 엘리의 입에서도 나오지 않은 하나님의 성품들을 보여줍니다. 특히 한나가 말한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단순한 왕이 아니라 왕 같은 제사장인 예수님을 예언한 것이라고 본다면, 한나는 구약에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아본 첫 번째 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자기 소견대로 살던 시대에 깨달은 보배 같은 계시이며 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힘들 때일수록 하나님의 계시의 지혜와 말씀의 잔치가 필요합니다. 연휴인 5월 13일 저녁에는 양영전 목사님의 ‘십자가의 도’, 14일 오전에는 김종철 변호사의 ‘난민문제’에 대해 특강을 들으려고 합니다. 오늘도 갈 길을 몰라 헤매는 청춘들이나 양양 가까이에서 연휴를 보내실 분들이 참석하셔서 은혜를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2016년 5월 9일

성인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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