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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라브리 소식편지

존경하는 라브리 기도가족에게 올립니다.

언제부터인가 약국에서 가장 잘 나가는 약은 ‘피로회복제’라고 합니다. 사실 쉬는 것이 제일 좋은 약이지만, 피곤해도 쉴 수가 없는 형편 때문에 ‘약이라도 먹고 일하자’고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떤 정신과 의사에 따르면, 현대인들이 제일 자주 하는 말은 “피곤하다,” “쉬고 싶다.”는 말이라고 합니다.

라브리에 온 사람들도 마치 힐링 캠프에 온 것처럼 “쉬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줄을 섰습니다. 20년 전에 “공부 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던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강의 스케줄과 노동 시간을 겁내는 사람도 많고, 남들의 눈을 피하려고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마치 탈진한 엘리야를 보는 것 같다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요?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엘리야는 당대 최고의 영적 거인이었으며 불의 사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도 탈진하고 자살 직전까지 갔습니다. 아마 어떤 사람은 엘리야의 탈진과 현대인들의 탈진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말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엘리야와 현대인들의 시대 상황은 다를지 모르겠으나 근본적인 탈진의 원인은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첫째, 인생은 영적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한 일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영적 전쟁이었기 때문에 우리와는 다르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직장 일이든, 교회 일이든, 가정 일이든, 현대인들이 맡은 일 중에 어느 하나라도 영적 전쟁이 아닌 것이 없으며 쉬운 것이 없습니다.

둘째,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에서 오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는 일 때문에 지친 것이 아니라 정치적 탄압 때문에 지쳤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아합이나 이세벨과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것처럼 현대인들도 노동 자체보다도 불편한 인간관계 때문에 더 지치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셋째, 믿음이 식어서 탈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성령으로 충만하지 못해 탈진했거나 믿음이 식어서 탈진했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런 설명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엘리야의 회복 과정을 보면, 오히려 아무리 영적으로 충만하더라도 너무 피곤하거나 새로운 사명과 비전이 없으면 의욕상실이 오거나 탈진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엘리야는 어떻게 탈진 상태에서 회복되었을까요? 열왕기상 19:3-21을 중심으로 엘리야의 휴가법을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엘리야는 일상 업무를 쉴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브엘세바로, 거기서 또 호렙산으로 적어도 300km 이상 도피여행을 했습니다. 차도 없던 시절에 300km는 먼 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먼 여행 후에 그가 찾은 곳은 조용한 로뎀나무 아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평소에 하던 직업적인 “자기 일”(his own work, 히브리서 4:10)로부터 떠나서 쉬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밥 먹을 겨를도 없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가서 잠깐 쉬어라”(마가복음 6:31)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원래 ‘안식일’을 뜻하는 ‘사바트(Sabbath)’란 말은 ‘일을 쉬다’, ‘일을 중지하다’라는 뜻입니다. 엘리야가 마녀 이세벨과 싸우는 것을 중지하고 도망하는 것이 쉬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도망”은 비겁한 행동이라고 말하는데, 요셉도 보디발의 아내로부터 도망한 적이 있고 다윗도 사울왕으로부터 도망한 적이 있듯이, 힘이 없을 때는 잠시 피하는 것이 최상의 휴가법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둘째, 엘리야는 먹고 마시고 실컷 자는 사이에 새 힘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엘리야가 실컷 먹고 자도록 해 주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너는 평소에 바빠서 기도하고 말씀 듣는 것을 소홀히 했으니까 기도하고 말씀 듣는 것부터 하라’고 엘리야를 못살게 하지 않았습니다. 음식이라야 기껏 ‘떡 한 덩어리와 물 한 통’이 전부였지만, 그 하잘 것 없는 음식이 지친 사람에게는 보약이 되었고 자살 직전의 사람에게는 희망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먹고 마시는 것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 것도 이것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벌판에서 수천 명을 먹인 오병이어 사건이 그렇고, 제자들과 나눈 성만찬이 그렇고,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구워주신 것이나, 엠마오 도상에서 제자들과 빵을 드신 것도 그것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은 단지 배만 불리는 것이 아니라 ‘코이노니아(koinonia)’, 즉 ‘영적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 “천사가 그를 어루만지며”(19;5,7)라는 말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어루만지며(nahga)”라는 말은 ‘만지다’, ‘손을 대다’, ‘치다’, ‘여자와 함께 눕다(결합하다)’라는 말인데,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따뜻한 손길을 느끼도록 했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셋째, 엘리야는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아무리 하던 일을 그만두고 실컷 자고 배불리 먹었더라도,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는 시간을 가지지 못했더라면 진짜 안식은 놓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엘리야는 쉬면서 자신에게 맡겨진 시대적 사명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내가 할 일은 다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는 엘리야에게, “네가 어찌하여 여기에 있느냐?”라고 두 번이나 불렀습니다(19:9,13) 그것은 엘리야에게 펼쳐질 “제2의 인생”을 여는 비전이었습니다.

그것은 아합왕이나 이세벨과 싸우는 것보다 더 크고 국제적이고 장기적인 비전이었습니다. 그것은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후계자를 세우고 (열왕기상 19:16-21), 그를 통해 이웃 나라 사람인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 즉 시리아의 왕을 세우게 하고 (열왕기하 8:13-15),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게 하는 일이었습니다 (열왕기하 9-10장). 이 세 가지 사명은 엘리야가 평생 동안 했던 그 어떤 일보도 더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세미한”(다크 데마마, small whisper, tiny silence)이란 말은 ‘귀에 들릴 듯 말 듯한 조용한 음성’,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고요한 소리’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천둥 같은 직통계시가 아니라 마치 친구에게 부탁하듯 조용히 엘리야에게 새로운 업무를 맡기셨던 것입니다. 이 세미한 음성은 우리에게도 기도하다가, 책을 읽다가,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귀에 들릴 듯 말 듯한 조용한 음성’,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고요한 소리’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그런 세미한 소리를 듣는 것이 휴가의 진수입니다.

이번 여름에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 엘리야처럼 진짜 쉼을 얻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간사들의 건강과 재정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순간순간 주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이빨을 깨물어 보지만, 7월 15일부터 8월 18일까지 무더위 속에서 진행되는 한 달간의 여름학기 내내 수백 명을 섬기기가 쉽지는 않군요.

8월 18일을 기다리며

2013년 7월 31일 성인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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