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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라브리 기도 가족에게 올립니다.

오늘 아침에 풀을 깎았습니다. 새 학기에 찾아올 손님을 맞을 준비로, 흐드러 지게 핀 철쭉과 새파랗게 올라오는 잔디 사이사이에 올라온 쓸데없는 모든 잡 초를 잘랐습니다. 늦가을까지 치룰 잡초와의 전쟁을 생각만 해도 끔찍했던지, 말끔한 마당을 보니 기분이 매우 좋았습니다.

그러나 날카로운 예초기 날에 잘린 노랑 민들레를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아파 왔습니다. 춥고 모진 겨울을 견디고 막 고개를 내민 것들을 무참하게 자른 것 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한 때 제가 좋아했던 유행가 가수의 “잡초 같은 인생” 이란 노랫말이 생각나서 미안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물 한 잔을 주러 나왔던 제 아내가 할미꽃을 보고는 얼마나 반가 워하는지요! “작년에 다섯 포기를 심었는데 두 포기만 살았네. 이 예쁜 꽃을 옛날에는 잡초라고 불렀지만 이제는 야생화라고 부릅니다.”아뿔싸, 하마터면 예초기로 잘라버렸을 잡초를 제 아내가 그렇게도 좋아하다니...

일을 마치자마자 방에 들어와서 식물도감을 뒤져 보았습니다. 할미꽃은 한자 로는 백두옹(白頭瓮)이라 쓰는데, 머리가 하얀 노인이라는 뜻이랍니다. 아마 그것은 꽃이 지고 난 뒤의 열매가 흰 수염이 성성한 노인의 머리 모양을 닮았 다고 해서 붙인 이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설에 의하면 한 젊은이가 배가 몹 시 아팠을 때 머리가 하얀 노인이 가르쳐 주는 풀을 먹고 살아난 후에 그 노 인을 기억하기 위해 붙인 이름이라고도 합니다.

흔한 풀처럼 보이는 할미꽃은 예로부터 복통과 두통, 심장병, 학질, 위염 등 에 쓰였다고 하며, 뿌리는 뇌종양을 비롯하여 갖가지 암을 고치는데 좋은 효 과를 보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연구 중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꽃은 예쁘 지만 뿌리에는 독이 많기 때문에 자살용이나 낙태용으로도 쓰였다니 무서운 꽃이기도 하군요.

할미꽃만 아니라 민들레도 온갖 무시를 당하다가 최근에는 다양한 꽃 색깔만 즐길 뿐 아니라 나물이나 약재로도 쓰이고 있고, 더구나 은근과 끈기를 상징 하는 꽃말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새까맣게 익으면 블랙베리같이 보이는 까마 중은 대량 재배되어 발효 음료로 팔리고 쇠비름은 나물로 팔린다고 합니다. 구절초, 고들빼기, 금낭화는 물론이고 씀바귀, 방가지똥, 보리뺑이, 사데풀, 며느리밥풀 등 그 밖에도 잡초에서 야생화로 바뀐 꽃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잡초가 야생화로 바뀌는 것처럼, 잡초보다 못한 인생으로 취급받는 이 땅의 수 많은 청년들도 그렇게 바뀔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잡초가 익초(益 草)나 작물로 바뀌는 것처럼, 만약 온갖 스트레스로 자살 직전에 있는 청소년 들이 진리를 알고 예수 안에서 참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초기를 메었더니 온 몸이 쑤시지만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설악산 기슭까지 찾아올 청년들을 생각하니 다시 힘이 생깁니다.

한 동안 조용했던 라브리에는 다시 방문자들로 북적거립니다. 이롬그룹 신입 사원 21명은 이틀간 강의를 듣고 돌아갔고, 장신대 신학생 10명도 잠시 다녀 갔습니다. 서울VM청년(내수동, 사랑의, 샘물, 남서울교회 청년) 약 35명은 인 근 펜션에서 머물며 라브리에서 강의도 듣고 식사도 하고 돌아갈 예정입니다. 그 밖에도 한동대 외국인 교수님들과 학생들, 크고 작은 교회 목사님들과 성 도들이 잠시 다녀갈 예정입니다.

이렇게 잠시 머물다가 가는 방문자들이 장기 합숙생들의 공부와 생활에 큰 지 장을 주기 보다는 신선한 자극을 남기고 가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리고 이번 학기에도 외국인들이 많이 다녀갈 예정인데 영어로 강의하고 개인 지도하고 예배드리고 소통 하는 데에 너무 힘이 들지 않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가운 소식과 함께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저희 부부가 지난 2월에 방문하고 너무나 큰 도전과 은혜를 받은 예인교회(정성규 목사)가 라브리에 간사 숙소 를 위해 집수리가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목수, 전기 기술자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집짓기 팀을 보내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일할 사람은 준비되어 있는 데 자재비가 없습니다. 수리비와 자재비가 속히 준비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 랍니다.

지난 주에는 상범, 보경씨 부부가 저희가 10년간 살았던 백암당으로 들어와서 라브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몇 달 동안 협동 간사로 일하며 공동체 경험을 한 후에 간사 지원 여부를 결정할 예정입니다. 민현, 보경 간사 부부는 휴식 기간에 데크 페인트를 잘 마쳤으며, 이번 학기부터는 춘성 간사님이 쓰시던 별채에서 식사 대접을 할 예정입니다. 수연 간사는 매주 토요일마다 자기 집 에서 식사를 대접할 예정입니다. 은미씨도 열흘 정도 도우러 올 예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저희 부부는 휴식 기간 동안 여러 교회와 단체에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감사하게도 한국교회의 여러 면을 보고 시야도 넓히 고 도전도 많이 받았습니다. 저희가 방문한 교회들은 전반적으로 건강한 상태 였으나 위기가 느껴지는 교회도 있었습니다. 그 위기라는 것은 첫째는 젊은 층의 감소이며, 둘째는 오래된 교회의 형식화이며, 셋째는 진리의 상대화 등 이었습니다.

그러나 한 집회에 갔다가 매주 집으로 찾아오는 손님 30 여명을 밥 해 먹이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다는 자매 이야기를 듣고는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았습니 다. 특히 그 자매가 한 사람이라도 집에 더 앉히기 위해 침대도 팔고 책상도 팔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는 오금이 저려왔습니다. 말씀을 전하러 갔던 저희 부부가 오히려 큰 도전을 받고 온 것은 물론입니다.

한 때 라브리를 세운 프란시스와 이디스 쉐퍼 부부가 밥그릇과 찻잔이 모자라 먼저 먹었던 사람의 그릇을 씻어서 대접했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지금도 주부 습진이 생길 정도로 밥하고 설거지 하며 손 대접하는 잡초 같은 사람들이 지 구촌 곳곳에 있기에 이 땅에 소망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만약 집집 마다 사람들을 대접하며 전도하는 날이 오도록 기도를 부탁드린다면 저의 지 나친 욕심일까요?

2012년 5월 1일 트리하우스에서

성인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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