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기도가족에게 올립니다.
추운 겨울을 잘 보내셨습니까? 설악산 기슭은 며칠 째 봄이 온 듯이 따뜻합니다. 아직 산에는 눈도 쌓여있고 꽃샘추위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벌써 마음은 밭에 다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농부들은 밭에 거름을 다 뿌렸고 가지치기도 다 끝낸 것 같습니다. 매년 라브리 텃밭 한 모퉁이를 가꾸는 모두리 집사님은 화상 입은 손으로 벌써 배나무 가지치기며 작년에 심었던 고춧대 정리 등을 마치고 땅이 녹기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 부부도 봄이 무척 기다려집니다. 따뜻한 날씨가 그립기 때문만이 아니라 작년에 간사들이 참나무에 표고버섯 종균을 심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며칠 전에 겨울 학기 마지막 날까지 남았던 학생들과 헤어지는 날 아침에 읽었던 말씀처럼, 지난 겨우내 문턱이 다 닳도록 다녀간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뿌린 말씀의 씨앗이 어떻게 자랄지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니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 버렸고, 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낫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누가복음 8:5-7) [매일성경]에 의하면, 예수님은 이 비유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네 가지 종류의 마음 밭을 이야기 해 주고 있다고 합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겨울 학기를 반성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길 가에 떨어진다는 것은 건성으로 말씀을 듣는 사람들에게는 말씀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마귀가 말씀을 빼앗아 버린다는 것입니다. 추운 겨울에 라브리까지 왔으나 말씀을 귀담아 듣지 않고 세월만 낭비하고 돌아간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에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한 프랑스 여대생이 기억납니다. 간사들이 최선을 다해 귀까지는 열수는 있었으나 마음은 열 수가 없었습니다.
둘째, 바위 위에 떨어진다는 것은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싹을 내지만 뿌리가 깊지 못하므로 마귀가 시련을 주면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이번에 “넘 좋았어요.” “이제는 제대로 살게요.”라고 말하고 간 사람들 중에, 라브리를 떠난 지 몇 주도 안 되어 벌써부터 약속을 어기거나 흔들리고 있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지만, 저희들은 “라브리 문을 나서면 돌보지 않는다.”는 원칙 때문에 가슴만 졸이고 있습니다. 이들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셋째, 가시떨기에 떨어진다는 것은 세상의 염려와 물질적인 유혹과 부적절한 쾌락 때문에 싹이 나서 자라다가 기운이 막혀 시들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학교나 직장에서 고전분투하고 있으리라 믿지만, 확실히 그 중에 일부는 쓰라린 실패와 죄를 경험하게 되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우리는 씨 뿌리고 물을 주지만 “거두는 이는 주님이시라.”는 말씀을 믿고 오직 그 분의 손에 그들을 맡길 뿐입니다. 지금도 씨름하고 있는 사람들이 잘 견디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넷째, 좋은 땅에 떨어진다는 것은 말씀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굳게 붙잡고 시련과 유혹을 견디고 구원을 얻는 것을 말합니다. 간절히 바라기는 지난 겨울에 라브리를 다녀간 모든 사람들이 이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누구도 초청하지 않았고 광고도 하지 않았으나 자발적으로 기독교세계관학교에 참석했던 목회자들과 청년들, 특히 미국, 호주 등에서 온 한인 2세들, 그리고 지난 6주간 머물다 간 모든 청년들에게 그런 열매가 맺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러분의 지속적인 기도가 필요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으나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하다가 여기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청년들입니다. 한 청년은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처음으로 깨닫고 얼마나 좋았든지 닭똥 같은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찾아 중국에서 비행기로 날아온 남편도 있었습니다. 그 부부의 지속적인 회복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르니아 탐험대”라는 기상천외한 모임도 라브리를 방문했습니다. 정인영 선생님이 이끄는 교사 7명, 학생 10명으로 구성된 이 모임은 씨 에스 루이스(C. S. Lewis)의 ‘나르니아 연대기’를 읽고 양양에서 캠프를 하는 중에 잠시 라브리를 방문하여, 제 아내 경옥 간사로부터 ‘동화속의 세계관’이란 강의도 듣고, 서로 독후감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한 선생님은 루이스마저도 마무리 하지 못한 카스피안 왕자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연대기 제8권을 지어 오기도 했습니다.
간사들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저희와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춘성 간사는 라브리를 사임하고 영어 시험을 준비 중이오니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민현, 보경 협동간사는 맏아들의 진로와 그리고 인근 교회와 아동센터를 잘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5개월간 같이 지낸 헝가리 청년 바나바, 계명대 학생 지훈, 올해 김천대에 입학한 명혜의 수고가 없었더라면 긴 겨울을 보내기가 무척이나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매주 영화 상영과 식사를 도와주는 양양중앙감리교회 전인석 목사님과 장혜원 사모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제 아내와 저는 5월 10일까지 안식월을 가질 예정입니다. 제 아내는 아픈 데는 없지만 몸이 많이 허약해져 있어서 조용히 책을 읽고 글도 쓰며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안식월 동안 좋은 간사님을 찾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라며, 간사들을 위한 좋은 숙소 수리를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백암당’을 수리 하려면 약 천오백만원, 도서관을 숙소로 개조 하려면 약 3천만원이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저희 간사들은 한 명을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것을 최고의 기쁨과 보람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앞으로 얼마동안 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살 수 있을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여러분의 기도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때입니다.
2012년 2월 15일
라브리에서 인경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