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라브리 소식편지
겨울하늘은 파랗다 못해 시리고 가녀린 솔잎들은 파르르 떨며 서로의 몸을 의지하고 있습니다. 마당의 눈밭은 햇살보다 더 눈이 부시고 눈 위를 누비는 이레(개 이름)는 행복에 넘쳐 보입니다. 창문 가득 겨울이 펼쳐 있는 아름다운 아침이네요. 어제 학기를 마치고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라브리에 홀로 남은 저희 가족은 이런 조용한 아침을 어색해하며 모처럼 얻은 소중한 쉼의 시간에 들어가려고 합니다. 라브리 가족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참 영광스럽고 반가운 일이지만 오랜만에 편지를 올리면서 한해를 돌아보고 안타까운 일과 더불어 하나님의 은혜와 이에 대한 감사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지난달 기도편지에서 저희는 손님 숙소인 예문실의 난방공사가 시급함을 알려드리고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여러분들의 기도와 도움으로 공사비가 충분히 들어와서(1월 초 약속헌금 600만원 포함), 어제 바닥 공사가 끝나고 지금은 시멘트가 마르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직 전기 보일러 설치와 보일러실 벽 공사, 장판과 벽지 붙이기 등이 남아있습니다. 연말까지 잘 끝나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공사도 아직 마치지 못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번 겨울에도 많은 사람들을 보내시려는지 벌써부터 예약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헌금이 들어오고 공사가 시작되는 것을 쭉 지켜본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기도한 것이 응답이 되고 현실화되는 것을 처음 보았다.”고 하네요. 이 청년은 몇 대에 걸쳐 예수님을 믿었으나 본인에게 이런 체험은 처음이라고 합니다. 난방공사를 통해서 지금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여주심에 찬송과 영광을 돌려드립니다. 이제 한해를 돌아보며 중요한 몇 가지를 말씀드리고 기도부탁을 하려고 합니다.
첫째, 라브리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연령대와 국적이 다양화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청년들이 대부분이지만 요즘 청년들이 20대에서 40대 초에 이르는 두꺼운 층을 이루고 있어 찾아오는 청년들의 연령이 무척 다양합니다. 게다가 숨 가쁘게 달려온 걸음을 잠시 쉬거나 직장에서 은퇴를 한 후에 제2의 인생을 계획하는 분들도 많이 오십니다.
지난 여름세계관학교에는 박사과정에 있는 40대, 50대 여성교역자들이 공부하러 오셔서 저희가 당황하기도 했습니다. 외국인들은 주로 국내에 거주하는 영어 선생님들이지만 최근에는 서양 사람만 아니라 싱가포르, 네팔, 헝가리 사람 등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언어와 문화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저희에게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찾아오는 사람들을 잘 섬기도록 기도해주십시오.
둘째, 올해는 유난히 공사가 많았습니다. 봄에는 집의 남쪽 벽에 처마를 달아내어 다니기가 많이 편해졌고 나무 기둥과 벽들을 보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름에는 못 다한 서쪽 벽 처마공사와 저희가 이사한 나르니아 집 난방 공사가 있었고, 가을에는 정지인 집사님이 라브리의 명물이 된 나무집(Tree House)을 지어주셨습니다. 난방시설이 없어 겨울에는 사용할 수 없지만 봄부터는 기도의 집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손님 숙소인 예문실 난방공사가 진행 중입니다. 올해를 시작할 때에는 전혀 예상치도 못했던 건축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집을 주실 때는 손님들도 같이 보내신다는 것을 알기에 조금은 걱정이 앞섭니다. 건강한 다른 간사들과는 다르게, 1년 내내 쉬지 못한 저는 몸에 기운이 다 빠져나간 듯 겨우겨우 지탱해 왔기에 속히 힘을 다시 얻을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셋째, 단체 방문도 많았습니다. 한동대학교 교수님과 학생들의 방문이 봄부터 무려 세 차례나 있었습니다. 코델 슐튼(Cordell Schulten) 교수님과 제레미 냅(Jeremy Knapp) 교수님의 수고로 2박 3일간 강의와 노동, 식사 등을 나누며 서로 배우는 귀한 시간이었는데 이런 방문이 지속적으로 발전되기를 바랍니다. 빛과소금교회 청년들도 매년 찾아오고 있고, 며칠 전에는 속초중앙교회 고등부 교사들과 학생들도 방문하였습니다. 내년에도 꼭 필요한 사람들이 찾아오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먹이고 쓸 것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넷째, 가슴 아프게도 전임 간사들이 다 떠나고 있습니다. 이춘성 간사도 유학준비를 위해 2월에 사임할 예정입니다. 양양에 온지 10년 동안 이곳을 지나쳐간 학생들과 손님들, 간사들의 얼굴이 떠오르며 즐거웠던 일, 가슴 아팠던 일, 후회스러웠던 일들이 한데 섞여 스쳐갑니다. 지나온 날들을 냉철하게 돌아보며 새로운 시작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좋은 사람들이 있을 때는 잘 해 주지 못하고 떠나간 후에는 늘 후회하곤 하는 어리석고 미련한 저희 부부를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기를 기도해주십시오.
올 해 초에 양양으로 이사 온 백민현, 박보경 협동간사는 내년에도 계속 라브리를 도울 예정이며, 바나바(Barnabas Nagy)는 겨울학기까지 섬긴 후에 2월 중순에 헝가리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최정원 씨는 고맙게도 자신의 일을 제쳐놓고 미국에서 오자마자 한 달을 도와주었습니다. 내년에도 찾아오는 사람들을 잘 가르치고 돕고 먹이려면 좋은 간사들이 시급하오니 특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다섯 째, 저희 가정 소식을 간단히 전합니다. 어떤 분은 최근 기도 편지에 저희 아이들 소식을 쓰지 않느냐고 물으시는 분들도 있는데, 아마 저희 부부만 이 아이들을 키운 것이 아니라 여러 라브리 가족들이 기도하며 같이 키우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어라 감사의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기진이는 아직도 아토피로 고생하고 있으며 양양을 다녀 간지도 약 5년이 넘었습니다. 혜진이는 허리병과 학비로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 번 조마조마하게 했지만 지금까지 잘 버텨주었습니다.
기진이는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데 기독교세계관을 기초로 논문을 잘 쓰도록 기도해주십시오. 혜진이는 여름에 대학을 무사히 졸업하기를 바라고 있으며 그 후의 진로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의진이는 양양 지역 아동센터를 도우며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와 지혜가 필요한 때이오니 계속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지를 마치며, 한 가지 작은 부탁을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하게도 어떤 분들은 속초나 강릉 주변에 오셨다가 라브리를 기억하고 종종 들려주십니다. 다만 저희에게 폐가 된다는 이유로 연락을 주시지 않고 갑자기 방문하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저희가 없을 때에 다녀가시면 아쉽기도 할뿐더러 바쁜 와중에 황망하게 보내드리고 나면 후에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릅니다. 미리 알려주시면 저희가 차 한 잔이라도 따뜻하게 대접하고 싶습니다.
올 한해는 이 나라의 기독교인으로서 차마 얼굴을 들 수 없었습니다. 지도자들의 윤리적인 부패와 영적혼란 등으로 이례 없이 매우 절망스러운 한해였습니다. 저희 부부 스스로 “한국교회 하수종말처리장”이라고 부르는 라브리도 “냄새나는 넓은 개천”이 안 되도록 먼저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곳에 오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잘 도와서 이 땅의 청량제가 되도록 기도해주십시오. 이런 깊은 절망 속에 찾아오신 예수님께 더욱 감사드리며 사랑하는 라브리 가족 여러분께 성탄의 축복이 넘치시기를 기도합니다.
2011년 12월 17일
박경옥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