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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5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라브리 기도 가족 여러분께 올립니다.

한 해가 시작되고 벌써 오월입니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명칭이 무색하지 않게 라브리 앞 정원에는 울긋불긋 총천연색의 철쭉이 카페트처럼 펼쳐지고 있고 입구에는 붉고 하얀 패랭이꽃이 보라색 벌개미취가 피어나기를 기다리며 먼저 자리를 잡았습니다. 간사들의 텃밭에는 여름과 가을을 기대하며 심겨진 상추며 깻잎이며 옥수수가 뿌리를 내리고 있고 겨우내 추위를 견디고 꽃을 피운 딸기는 이제 알찬 열매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시나브로 신록이 온 산을 뒤덮고 있는 지금이 과연 오월인가 봅니다.

온갖 나무며 식물들이 움을 트고 자라나는 동안 라브리에는 많은 손님들이 다녀갔습니다. 그 중에서도 독일계 건축 하드웨어 회사인 헤펠레 코리아의 직원들이 봄학기의 주빈이엇습니다. 이분들이 라브리에 와서 진리를 발견하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도록 저희는 다른 많은 분들을 아쉽게도 돌려보내야만 했습니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단어를 굳이 사용하지 않더라도 이번 봄 학기에 저희 간사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 매력적이고 소중한 마흔 세분과 함께 하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함께 땀 흘리며 밭을 갈고 나무를 자르고 길도 냈습니다. 같이 밥도 먹고 차도 마시며 밤늦도록 이야기꽃도 피웠습니다. 한 날은 영화를 보고 토론하기도 했고 한 날은 강의를 듣고 깊은 생각을 나누기도 했습니다. 때로는 그분들에게 생경하기 그지없는 성경을 펼쳐 함께 읽으며 과연 하나님이 존재하시는가? 예수님은 과연 어떤 분이셨는가? 그분과 나는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는 질문들 앞에 진지하게 머리를 맞대고 열띤 토론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많은 정직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잊혀 지지 않는 인상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한 분이 이렇게 물었어요. “간사님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나요?” 질문에 대한 정교한 답을 찾느라 정신이 없던 터에 너무 진솔한 그 질문을 받고 저는 그만 무장해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왜 하나님을 믿어야 하고 예수님을 내 구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가에 대해 어렵게만 설명을 하다가 내가 알고 믿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정직하게 소개를 해달라는 쉬운 부탁을 받고 정곡이 찔렸다고나 할까요? 물론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하나님도 못 믿겠고 성경도 믿기 어렵다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몇몇 분들은 성경이 무조건 믿음만 강요하는 책이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합리적인 해석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는 분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존재하시며 성경이 정말 진리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저는 그런 고백을 들으면서 과연 이분들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 라는 의문을 가졌던 저의 마음 속 태도를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이 천년 전 바울 선생님의 고백은 오늘 저와 라브리 간사들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과연 우리는 씨를 뿌렸지만 물을 주고 자라게 하시며 열매를 맺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과 함께 지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은 자신이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이 자신을 미워하실 것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원초적 거절감이라고 할까요? 도대체 누구에게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는지 안타까울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에게나 동일하게 비와 햇빛을 주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이런 원초적 거절감이 비신자들로 하여금 복음을 거부하고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보았습니다.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진리를 사랑으로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무례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은 태도로 겸손하게 전해주는 복음이 정말로 듣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저희 간사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이기도 했습니다. 간혹 저희 간사들도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을 다 가지고 있다는 듯이 목을 곧게 뻣뻣이 세운채로 식탁 테이블에 앉아서 일방적인 설교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마음껏 기독교에 대해 질문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면서도 상대방이 가지고 있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영혼의 간절한 외침을 놓치지 않고 진솔하면서도 정직한 복음을 전해 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럴 때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분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복음과 진리에 귀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요?

지난 10주간 헤펠레 가족들과의 생활은 참으로 즐거웠습니다. 그러나 그분들을 한 분 한 분 섬기느라 라브리 간사들은 거의 기진맥진해 쓰러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인경, 경옥 간사는 학기가 끝나고 제대로 휴식도 갖지 못한 채 여러 곳에서 강의 부탁을 받아 여행을 하게 됩니다. 캐나다에 있는 기진군은 최근에 갈비뼈가 두 대나 부러지는 사고가 있었고, 혜진양은 허리가 아파 침대에 누워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 혜진양은 하나님의 은혜로 3학년까지 학업을 잘 마쳤으나 앞으로 남은 1년 동안의 학비가 부족합니다. 의진군은 캐나다에서 영어공부를 마치고 라브리로 돌아왔는데 대학진학을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수연씨는 인근 지역 초등학교 교사로 열심히 어린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지역사회를 잘 섬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호, 지민이는 지난 봄 내내 떨어지지 않던 감기가 떨어져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특별히 건강이 좋지 않은 몇몇 간사들이 있습니다. 모경간사는 지난 겨울 혹독한 날씨에 일을 하느라 무리가 되었는지 손가락이 잘 굽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은하간사도 최근에 몸이 좋지 않고 저도 한 달 전에 왼쪽 귀가 잘 들리지를 않아 여러 차례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다행히 라브리 아이들(가희, 한희, 지호, 지민)은 부모들과는 달리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어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얼마 전에 가희, 한희와 함께 화분에 꽃씨를 뿌렸는데 물을 주고 햇볕을 쬐여서 이틀을 두니 흙속에서 조그만 싹이 돋아 나왔습니다. 그런데 큰 아이 것은 제법 많이 나왔는데 작은 아이 화분에는 싹이 하나도 안 나온 것입니다. 부모심정에 그것이 안타까워서 꽃씨를 새로 사서 심어 주려고 했더니 그 사이에 싹이 나서 움을 티운게 아니겠습니까? 이제는 제 언니 것 보다 더 무성하게 나서 곧 있으면 이쁜 채송화가 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작은 싹을 보면서 제게 작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강원도 산골짜기에 찾아오는 많지 않은 사람들을 섬기면서 ‘무슨 선한 것을 볼 수 있을까?’ 생각했던 의심 대신 ‘울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가운데 들어왔습니다. 아름다운 꽃들이 온 산과 들을 덮고 있는 오월에 이 작은 소망이 그 꽃들처럼 온 세상에 가득 퍼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0년 5월 18일

라브리에서 서은철 간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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