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라브리 기도 가족 여러분께 올립니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라브리에 감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 지난 연말부터 시작된 학생 숙소와 별채 공사가 잘 마무리 되었습니다. 공사를 통해 몇 가지 달라진 점은 큰 부엌이 없어진 대신 작은 부엌공간과 새로운 학생 숙소가 만들어 진 것입니다. 그리고 늘 썰렁했던 홍석홀에는 새로운 화목 난로를 넣어 따뜻한 로비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작은 난로가 얼마나 화력이 좋은지 그 넓은 홍석홀 전체 공기를 데우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습니다. 난로 덕분에 외투를 입지 않고도 홍석홀에서 차도 마시며 공부도 할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구 주유소 건물은‘별채(Old Gas Station)’라 이름 짓고 춘성 간사가 밥을 해서 학생들을 먹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쓰고 있습니다.
위기도 있었습니다. 공사가 원래 약속되었던 2주를 훌쩍 넘기고 한 달을 끌었는데, 공사기간 내내 한파와 폭설로 수도가 꽁꽁 얼어 별채공사는 해를 넘겨서까지 해야 했습니다. 학기를 코앞에 두고는 심야전기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큰돈을 지불하고 공사를 해야 했고, 라브리 전체에 물을 공급해 주는 펌프에도 이상이 생겨 한 밤 중에 일어나 시간마다 체크해야 했습니다. 진도개 강아지 ‘뚜어시(多喜)’는 마당에 예고 없이 들어온 차에 치어 죽기도 했고, 모든 간사들이 학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거의 쓰러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고 라브리를 피난처로 삼아 진리를 찾기 위해 이 먼 산골짜기까지 찾아 온 학생들을 보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습니다. 정성을 다해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식사시간을 넘겨 가며 토론을 이어가고, 한 사람 한 사람 ‘개인지도(Tutoring)’를 통해 학생들을 섬기고 가르치니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내 양식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라는 말씀이 무슨 뜻이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학기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저희 간사들이 학기 중에 쓰러지지 않고 학생들을 잘 도울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1월 12일부터 한 주간 동안에는 겨울 세계관 학교가 열렸습니다. 호주 라브리 대표로 있는 프랭크 스투트만(Frank Stootman) 박사를 모시고 전 라브리 간사였던 김정훈 목사의 통역을 통해 ‘과학과 신앙(Science and Faith)'이라는 주제로 공부를 했는데, 매 시간 진지한 강의와 토론에 깊숙이 빠져 라브리에 '화재(話災)'가 날 뻔 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호주 라브리 대표이기도 하지만 평생 과학을 가르쳤던 노학자의 진리탐구에 대한 열정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들은 최근에 진리에 대한 탐구에 매진했던 적이 있는지요? 세계관 학교가 끝난 지금, 프랭크가 던지고 간 질문들에 학생들이 정직한 반응을 하고,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의 진리 앞에 바로 설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학기에도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많은 학생들이 라브리에서 장 단기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폭설을 뚫고 학기가 시작하는 첫날 새벽 양양에 도착해 제일 먼저 라브리를 찾아온 충성씨는 젊은 철학도로서 세상에서 무너진 자신의 신앙을 바로 세우고 기독교적 세계관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찾아온 귀한 학생입니다. 바른 세계관을 통해 자신의 진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찾아온 원자핵 공학도 정엽씨 역시 앞으로 이 나라와 민족 앞에 귀하게 쓰일 형제이구요. 멀리 광주에서 찾아온 지혜씨는 유치원 선생님으로서 어린이들을 가르칠 교육 철학에 너무나 많은 인본적인 가치관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성경이 가르치는 올바른 교육철학을 배우고자 하는 동기가 마련되었다고 합니다. 진현군은 공립학교를 그만두고 국제학교를 다니다 방학동안 기독교 세계관을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찾아온 가장 젊은 남자 청년입니다. 청소년이지만 어쩌면 우리 가운데 가장 소망이 있는 친구가 아닐까 생각 합니다. 국제 선교 단체 간사로 일하다 퇴직하고 여러 차례 라브리를 방문한 경민씨는 ‘인간 하나님의 형상’을 계속 공부하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라브리를 찾아오신 분들이 많은데, 지역교회를 오래 섬기시다 찾아오신 목사님, 전도사님을 비롯해 연세가 지긋하신 장로님 부부와 많은 질문들을 가지고 찾아온 여러 선생님들, 미국에서 온 아버지와 함께 작은 음악회를 열어주었던 데이빗 부자(父子) 등 모두들 자신들의 질문에 대한 정직한 답을 찾기를 원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바라기는 이 분들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며 모든 진리는 하나님의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삶을 세상과 이웃을 위해 드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래서 이분들이 산골짜기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들에게 가슴 벅찬 보람이 되고, 여러분들에게는 기도의 응답이 되며, 우리 하나님께는 놀라운 기쁨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인경, 경옥 간사의 건강과 그의 자녀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특별히 경옥 간사는 최근 신체리듬이 갑작스럽게 깨지는 증세에 당황하곤 한다고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인경간사를 위해서는 그의 강의와 리더쉽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학생들과 간사들은 많으나 기도와 체력이 못 따라가지는 않을까 염려가 되신다고 합니다. 캐나다에 있는 기진, 혜진, 의진 남매에게 필요한 학비와 생활비가 떨어지지 않고 혜진이의 요통이 치료되도록 또한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이번 학기부터 복직한 춘성 간사는 라브리에 잘 적응하고 있어 무척 감사합니다. 특별히 춘성 간사는 이번 학기가 끝이 나면 동탄에 있는 집을 정리하고 양양에 집을 얻어 가족과 함께 내려와야 합니다. 속히 집이 구해지고 부인 수연 간사의 직장이 라브리 근처 학교로 정해질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지난 12월부터 일하고 있는 모경간사는 신입간사로 첫 학기를 잘 보내고 있습니다. 본인이 염려했던 학생들의 ‘개인지도’도 잘 해내고 있으며, 라브리 생활에 빠르게 적응을 하고 있어 여러분들의 기도덕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학기 헬퍼로 다시 일을 시작한 정원씨 역시 체력을 잘 조절하면서 학생들을 섬기고 있는데 이 두 분이 라브리에서 영, 육간에 건강하게 지낼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가희, 한희는 이제 라브리가 무척 편해졌습니다. 라브리 개들도 겁내지 않게 되었고, 학생들과도 스스럼없이 잘 지냅니다. 라브리에 온지 일 년이 되어가는 은철, 은하간사가 학생들을 잘 지도하고 라브리를 구석구석 세밀히 돌아볼 수 있는 관찰력과 지혜가 생기도록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4:6-7절)
날씨는 춥고 살림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올 한해에도 이 곳 산골짜기에 필요한 사람들과 필요한 물질이 끊어지지 않도록 보내어 주실 것을 믿습니다. 부디 이 일에 올 한해에도 기도 가족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도와 동역을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10년 1월 27일
라브리에서 서은철 올림
꽁지머리 총각의 구도 일지
성인경 (라브리공동체 대표)
2010년 1월 27일, 오전에는 꽁지머리 총각과 그 친구들이 장작을 팼습니다. 난로용 마른 나무를 구하기 위해 산을 오르내린지 벌써 2주째, 오늘은 참나무 장작을 몇 짐이나 만들었습니다. 맨손으로 톱과 도끼만 들고 만든 장작치고는 최고 품질의 땔감입니다. “올 해는 양양 시장에서 참나무 한 트럭에 80만원이다.”는 소문을 듣고, 꽁지머리는 마음속으로 “며칠만 기다리시면 내가 그 만 한 돈을 벌어드리겠습니다.”고 다짐을 했는가 봅니다.
꽁지머리는 장작 만들기 대작전에 들어갔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동지들을 모으는 것입니다. 핵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는 한 대학생은 이제 제법 톱질을 잘합니다. 군대에서 마지막 휴가를 나온 최 병장은 자기 허리만한 통나무도 무 쓸듯 자릅니다. 헬라어와 히브리어에 파묻혀 있다가 머리를 식히러 온 신학도는 도끼질에 서툴지만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유치원 여 선생님은 쇠줄로 톱 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 선교단체 대표의 비서로 일하던 자매는 자기 몸무게만큼 나갈만한 나무를 지게로 운반합니다.
동지들이 장작을 패는 동안, 꽁지머리는 아침 내내 숫돌에 도끼날을 시퍼렇게 세우는 일을 했습니다. 어설픈 동지들이 도끼날을 갈다가 손을 빌까봐 자기가 제일 위험한 일을 솔선한 것입니다. 그러나 동지들의 장작 패는 솜씨가 영 마음에 안 들면 본인이 직접 패기도 합니다. 아무리 큰 통나무도 한 방에 “짝” 갈라집니다. 꽁지머리는 단지 장작만 패지 않습니다. 철학도인 자기 자신의 의심 많은 두 마음을 쪼개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후에는 동지들의 ‘감정과 이성’이라는 에세이 낭독과 논평을 들었습니다. 자기가 팬 참 나무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벽난로 옆이라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자기보다 10살이나 어린 말총머리가 라브리에 와서 형들과 누나들에 끼여 살며 감정과 이성 사이를 오락가락 하며 받은 상처를 끄적 그린 글이었습니다. 비유가 아주 멋졌습니다.
“잠자리 한 마리가 있었다. 내 인생을 맞바꾸고 싶을 만큼 아름다운 잠자리가 있었다. 그 잠자리를 잡고 싶었다. 잠자리가 도망가면 어쩌나 하고 깊은 고민에 빠지기도 했지만, 나는 나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잠자리에게로 손을 뻗고 있었다. 하지만 잠자리가 도망가는 대신 나를 깨물었다. 잠자리에게서 받은 실망은 컸지만, 내 스스로 그 잠자리를 포기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자유로운 그 잠자리를 사람의 손에 잡히게 하고 싶지는 않으셨던 모양이다. 이처럼 나는 감정에는 센스티브 하지만 이성을 통한 객관적 접근이 약하다는 것을 알았다.” 기대 이상으로 시적이고 냉철한 분석이었습니다.
이어서 톱질을 잘하는 핵물리학도가 말총머리의 글에 대해 논평을 했습니다. “저도 이성과 감정을 완벽히 정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성도 불완전하고 감정도 불확실하기 때문이죠. 위의 말 자체는 그 안에서 자체모순이죠. 양 극단에서 한쪽만을 추구하였을 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은 ‘진리는 살아있다’라는 책에서 저도 발견하게 되었죠. 개인적으로 이성과 감성은 서로를 보완하는 장치로서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잠자리를 잡고 싶다면, 잠자리에 대해 공부해보세요. 그리고 잠자리가 어떻게 느낄지 생각해 보세요. 잠자리를 잡으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솔직해 져 보세요.”
핵심을 찌르는 간결한 논평에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논평자를 주시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난 3주간 한 방을 썼던 룸메이트였습니다. “이 친구가 핵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면서 어떻게 내가 전공한 헤겔의 변증법을 꿰뚫고 있단 말인가?” 바로 꽁지머리였습니다.
결국 꽁지머리도 무거운 입을 열었습니다. “이성과 감정의 우열 다툼 역사가 바로 서양 지성사(知性史)지요. 서양 철학은 한 마디로 이성을 우월시 하는 관념론과 감정을 우월시 하는 경험론이 대립한 역사입니다. 기독교 세계관적으로 볼 때, 우리는 두 가지를 하나 되도록 해야지 분리해서 이원론적으로 만들면 서양 꼴이 나는 것입니다. 완벽한 이성과 완벽한 감성이 어떤 것인지는 예수님의 삶을 바라보며 배우세요.” 용감한 간사 한 분이 그 말에 감히 딴죽을 걸었으나 “오후 티 타임이 마감됩니다.”는 홍석홀지기의 벨 소리에 그만 모두 자리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 무척 아쉬웠습니다.
저녁 로마서 성경공부 중에 꽁지머리는 비 신자의 질문에 대답도 했습니다. 최 병장이 자기는 교회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며, “예수를 믿고 구원받으려면 성경 전체를 다 공부해야 합니까?”라는 매우 정직한 질문을 했습니다. 간사들이 대답할 말을 찾고 있는 사이에 꽁지머리가 대답을 했습니다. “나도 처음에는 성경 66권을 다 알아야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나는 반도 안 읽어 봤지만 성경 어디를 읽어보아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메시지는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다 읽어보지 않고도 예수님을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더 이상의 사족이 필요하지 않은 대답이었습니다.
며칠 전에 폭설이 왔을 때, 이글루(눈 집)를 한 채 지은 사람도 꽁지머리였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밤낮으로 눈 벽돌을 구워서 집채만 한 이글루를 짓고는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조그마한 문을 하나 냈습니다. 허리를 굽힐 생각이 없는 교만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못 들어오게 하려는 궁리였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에서 가장 겸손한 사람들과 그 안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습니다. 제 아내가 가르치는 산골 동네 영어공부반 아이들도 그 안에서 컵 라면을 먹으며 영어공부를 했습니다. 그러나 목이 곧은 사람은 아무도 발도 들여놓지도 못했습니다. 어느 날 밤 꽁지머리가 벌벌 떨며 이글루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기에 제가 말을 걸었습니다.
간사: “날씨도 추운데 이글루 안에서 담배를 피우지 그래요?”
꽁지: “저는 라브리의 원칙을 지키고 싶습니다.”
간사: “이글루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이 라브리 원칙을 깬다는 말인가요?”
꽁지: “‘실내흡연금지’란 원칙은 이글루 실내에서도 지켜져야지요.”
간사: “그래? 이글루 안에서는 신발도 벗어야 되겠네.”
꽁지: “그럼요.”
간사: “왜 담배와 신발보다는 성경의 법을 지키지 그래요?”
꽁지: “무어라고예?”
꽁지머리에게 요즘 작은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비록 칼바람을 맞으면서도 라브리의 작은 약속을 지키려는 사나이의 가슴에 고요한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 같습니다. 목사의 아들로 살면서 기죽고 억눌렸던 그의 영혼이 깨어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예수님을 지성적으로만 아니라 체험적으로 만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각성의 그 날”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