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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라브리 소식편지

사랑하는 라브리 가족에게 올립니다.

내일 아침에 라브리에서 석 달을 같이 보낸 김홍규 강도사와 김혜순 사모가 두 자녀 세한이와 세라를 데리고 마산으로 돌아가고 나면 라브리는 다시 조용한 휴식을 맞이합니다. 폭설과 한파가 닥친 지난 한 달 동안, 합숙 공동체 생활은 제 아내 경옥 간사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큰 모험이었습니다. 수 십 명씩 밥을 해 먹이거나 세 대의 세탁기를 동시에 돌려도 빨래가 남는 날이 여러 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학기 마지막으로 다가갈수록 외식을 늘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간사들이 더 이상 빨래, 식사, 공부를 다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그나마 좋은 협동간사(Helpers)들이었던 정원씨와 혜순씨의 도움으로 모험을 잘 마쳤습니다. 혜순씨는 식사 준비와 학생 침대를 만들어 주었고, 정원씨는 식사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밤까지 모든 학생들의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이렇게 미끄럽고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성령님께서 약 100 여명의 이상의 학생, 손님들을 설악산 산골짜기까지 보내주신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지난 겨울 학기의 특징을 몇 가지만 정리해서 알려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3주 이상 머물다가 간 사람들인 노아, 문규, 지엘, 보아스, 경진 외에 장학생 정원, 홍규, 혜순으로 인해 공동체 생활이 매우 안정적이었습니다. 둘째, 비신자, 신학생, 목사후보생, 집사, 장로 등 다양한 사람들이 왔기 때문에 서로간의 의견차이로 때로는 밤이 맞도록 싸우다시피 했습니다. 셋째, 보수주의와 자유주의의 경계를 넘나드는 위험한 신학적 토론도 많았습니다. 넷째, 학생들이 남겨놓은 것이 많습니다. 재미있는 대화와 추억들, 공부하고 남긴 좋은 에세이뿐만 아니라 라면을 끓여먹기 위해 만들어 놓은 이글루가 아직도 마당에 남아있습니다.

다섯째, 다양한 강사들을 통해 유익하고 많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호주에서 온 스토트만(Frank Stootman) 교수, CMF 차기 사무총장으로 선임된 서원석 박사, 사업을 하시며 악의 문제를 연구하여 박사학위를 받은 구자만 장로, 좋은교회 아카데미 간사 심경미 예비목사, 양양 수리교회에서 농촌목회를 하며 꿈나무들을 키우시는 강형선 목사, 매주 영화와 예배를 인도해 주신 전인석 목사 등이 강사비도 없이 도와 주셨습니다.

모두가 떠나버린 라브리에서 이 편지를 쓰면서 갑자기 세월의 무상함을 느낍니다. 청년들과 울고 웃던 시간은 벌써 추억으로 아른거리고, 다시 그들을 만날 날은 아득한 미래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세월이 화살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피부로 절감합니다. 제가 세월의 무상함과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을 보니, 늙어간다는 증거이거나 삶의 지혜를 배우고 있다는 증거이겠지요?

바울 사도가 [에베소서]에서 잘 지적했듯이, 기독인은 나이가 들어가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혜로운 사람이기 때문에 세월을 어떻게 아낄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바울 사도는 ‘기독인이야말로 세월을 낭비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wiser)’이며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behaviour)’ 아는 현실적인 지혜자’라고 하는 기독인의 정체성을 분명히 가르쳐 주었습니다.(5:15)

그리고 그는 참 지혜자는 두 가지 특징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하나는 세월을 아끼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사람은 성령의 충만을 받아 모든 관계에 순종하는 사람(5:21-6:9)이라는 것을 길게 설명하고 있으나 여기서는 그것을 생략하고,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에베소서 5:16)는 말씀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첫째, 여기에 “세월”이란 말은 순간순간의 기회를 말합니다. 아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신약 성경에는 ‘세월’을 의미하는 단어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크로노스(kronos)’이고 다른 하나는 ‘카이로스(kairos)’입니다. 흔히 “크로노스”는 ‘기간’을 의미하고 “카이로스”는 ‘시점’을 의미하는데, “크로노스”는 “카이로스”의 연결과 집합이며, “카이로스”는 “크로노스”의 기초와 시작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5:16의 “세월”은 “카이로스”인데 ‘시점’ 즉 ‘순간순간의 시간’을 말합니다. 이것은 모두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이며, 누구도 마음대로 늘일 수도 없고, 화살이나 총알처럼 빨리 지나가는 것이며, 한 번 지나가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것이기도 하며,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요한복음 9:4; 히브리서 10:24,25)

둘째, “아끼라”는 말은 ‘도로 사라’, ‘구속하라’, ‘속량하라’는 말입니다. 본래 “아끼라(exagorazo)”는 말은 온갖 율법의 저주와 지배에 팔린 종들을 돈을 주고 도로 사거나 재 구입하여 친 아들로 입양한다는 말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갈라디아서 3:13; 4:5)

“도로 사라”고 한 것 중에, 영혼만이 아니라 시간이 포함된 것이 특이 하지 않습니까? 흔히 우리는 영적인 구원에만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을 적용하는데, 이 말씀은 예수님의 구속을 우리의 생명뿐만 아니라 우리의 시간 구원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월을 아끼기 위해서는 순간순간을 의미 있게 살고, 우선순위에 맞게 살고,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수천 명을 먹이고도 12 광주리를 모은 것처럼 자투리 시간을 ‘조각모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셋째, 세월을 아껴야 하는 이유는 “때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의 “때(hemera)”는 ‘하루, 아침부터 저녁까지’를 말한다고 하며, 일할 수 없는 밤이 아닌 낮 시간을 말하며, 상징적으로는 ‘우리가 사는 세대’를 말한다고 합니다.(마태복음 3:1; 누가복음 2:1) “악하다(poneros)”고 하는 것은 ‘타락하다’, ‘병들다’, '나쁘다, '간악하다'란 말이며, 도덕적으로 비난 받을 만한 나쁜 짓이라는 말이라고 합니다.(마태복음 12:45; 누가복음 6:22)

세월을 아껴야 하는 이유는 일할 수 있는 하루를 아껴서 부지런히 살 생각은 안 하고, “술 취하고 방탕” 하게 세월을 낭비하는 시대이기 때문인 듯 합니다.(5:18) 세월을 아껴야 할 이유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하나님의 선물이고 빨리 지나가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때가 게으르고 빈둥거리기 쉽고 병들고 악하기 때문입니다.

올 해도 벌써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여러분은 지나 간 세월을 되돌릴 수 없고, 그동안의 열매도 신통찮고, 세월을 낭비한 죄도 생각이 날 때면 만감이 교차하지 않습니까? 지나간 세월은 너그러이 용서한다고 하더라도, 다가올 세월을 다시 그렇게 안 살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렇다고 어리석은 사람처럼 과거 타령으로 세월을 더 낭비 할까요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처럼 현재를 의미 있게 살까요?

그러면 세월을 아끼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까요? 아마 저는 청년들과 울고 웃는 시간과 기도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내는 것일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간을 아끼기 위해 무슨 대가를 지불하겠습니까? 여러분은 “시간을 구속하라, redeeming the time"(KJV),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리십시오.”(공동번역), “기회를 놓치지 말라, making the most of every opportunity”, RSV, NIV)는 말씀을 어떻게 적용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기도와 헌금 그리고 사랑에 감사드리며 주 안에서 멋진 한 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2008년 2월 3일 저녁

성인경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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